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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애너하임의 에인절 스타디움을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디즈니가 한때 구단주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오래됐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는 구장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요.
그런데 최근 이 구장의 주인이 완전히 바뀌는 소식이 들려와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LA 에인절스 구단주 아르테 모레노가 23년 만에 구단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미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거래가 성사됐기 때문입니다.
새 주인은 낯선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NFL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구단주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대주주이기도 한 스탠 크로엔키(Stan Kroenke)입니다.
아스널은 지난달과 지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이 블로그에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네이밍라이츠 이야기를 다뤘던 구단이라, 개인적으로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오너십 아래 야구단까지 들어오게 된 셈인데,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이건 단순한 구단 매각 뉴스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rispyCream27 촬영(2019년 3월 25일, 시범경기 개막 전) · CC BY-SA 4.0
40억 달러, MLB 역대 최고가 매각
2026년 8월 말, 크로엔키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KSE)가 아르테 모레노로부터 에인절스 구단의 지배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MLB 공식 발표로 전해졌습니다.
거래 규모는 40억 달러(원화 약 5조 4,600억 원, 환율 1,365원 기준) 이상으로, 불과 몇 달 전인 2026년 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39억 달러(약 5조 3,200억 원)에 팔리며 세웠던 MLB 역대 최고가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습니다.
거래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승인을 거쳐 2027년 1분기에 공식화될 예정입니다.
모레노는 2003년 월트 디즈니로부터 1억 8,000만 달러를 주고 에인절스를 인수했던 인물입니다.
인수 초반이던 2004~2005년, 2007~2009년, 2014년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성과를 냈지만, 최근 10년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2015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했고, 이번 시즌도 53승 85패로 아메리칸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모레노는 올봄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구단을 팔 생각이 없다고 밝혔던 터라, 이번 매각 발표는 업계에서도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흥미로운 건 매각가 자체입니다.
스포츠 구단 가치 평가로 유명한 포브스는 2026년 기준 에인절스의 가치를 28억 달러(약 3조 8,200억 원)로 매겼는데, 실제 거래가는 이보다 40%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이 정도 프리미엄은 에인절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애틀 시호크스(96억 달러), LA 레이커스(125억 달러), 미네소타 팀버울브스(45억 달러)까지, 최근 석 달 사이에만 300억 달러(약 41조 원)어치의 미국 프로구단 지분이 손을 바꿨습니다.
마케터로서는 프로스포츠 구단이라는 자산 자체에 대한 투자 수요가 구단의 최근 성적이나 수익성과는 별개로 급등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여덟 번째 팀, 하나의 오너십
크로엔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던 건 앞서 말씀드린 아스널 때문입니다.
크로엔키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는 NFL 로스앤젤레스 램스, NBA 덴버 너기츠, NHL 콜로라도 애벌랜치, MLS 콜로라도 래피즈, 실내 라크로스리그 콜로라도 매머드,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까지 소유한 지주회사입니다.
여기에 에인절스가 더해지면서 외신은 이번 인수로 크로엔키의 프로구단 포트폴리오가 8개로 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오너가 미식축구ㆍ농구ㆍ아이스하키ㆍ야구ㆍ축구(북미와 유럽 양쪽)를 아우르는 셈인데, 이 정도로 종목과 대륙을 넘나드는 소유 구조는 미국 4대 스포츠 오너 중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크로엔키의 트랙 레코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램스는 2022년 슈퍼볼을 들어올렸고, 너기츠는 2023년 NBA 파이널 우승, 애벌랜치는 2001년과 2022년 두 차례 스탠리컵을 차지했습니다.
아스널도 지난 시즌(2025-26) 22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니, 크로엔키 산하 구단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유독 우승과 인연이 깊었던 셈입니다.
에인절스 팬들 사이에서도 새 주인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는 분위기인데, 현지 매체 KTLA가 전한 반응 중에는 (오타니 쇼헤이가) 지금 이 소식을 들으면 에인절스를 떠난 걸 후회하지 않겠냐는 농담 섞인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hensiyuan 촬영(2026년 5월 24일, 크리스탈 팰리스 대 아스널 경기 직후) · CC BY-SA 4.0
다만 크로엔키의 관심이 우승 트로피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크로엔키는 램스 홈구장인 소파이 스타디움을 직접 개발하면서, 잉글우드 일대 300에이커(약 121만㎡) 부지를 상업ㆍ주거ㆍ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복합 개발지구 “할리우드 파크”로 탈바꿈시킨 이력이 있습니다.
이 지구는 2028년 LA 올림픽 개회식 일부가 이곳에서 열릴 예정일 정도로 지역의 스포츠ㆍ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인절 스타디움이 있는 애너하임 “플래티넘 트라이앵글” 역시 구장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 주차장인 약 150에이커(약 61만㎡, 축구장 85개 남짓) 규모의 부지라, 업계에서는 크로엔키가 소파이ㆍ할리우드 파크 모델을 애너하임에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실현된다면 야구장 하나였던 곳이 소매ㆍ주거ㆍ호텔이 어우러진 연중 상업지구로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관중과 티켓
에인절스는 2025시즌 홈경기에서 총 261만 5,506명을 동원해 81경기 평균 약 3만 2,290명을 기록했습니다.
4만 5,050석(구장 안내 사이트 Itinerant Fan의 2026년 최신 자료 기준. 위키데이터 인포박스에는 4만 3,250석으로 다르게 표기돼 있어, 리모델링 등으로 시기별 좌석 수가 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규모 구장을 기준으로 하면 가동률은 70%를 조금 웃도는 수준입니다.
정가 티켓 가격은 리그 안에서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는 조사도 있어, 성적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좌석을 채우기 위해 가격 문턱을 낮게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 직관 후기 블로거들의 평가를 보면, 에인절 스타디움은 지어진 지 60년이 넘은 구장답게 노후한 구간이 있지만 그 나름의 매력도 함께 언급됩니다.
야구 전용 구장으로 설계된 덕분에 파울폴대에서 파울폴대까지 어느 좌석에서든 시야가 막힘없이 트여 있다는 점, 필드 레벨 콘코스 일부를 야자수 그늘 아래 피크닉 테이블이 놓인 야외 푸드코트로 바꿔놓은 점이 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 상층부(뷰 레벨) 콘코스는 폭이 좁아 사람이 몰리면 이동이 답답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옵니다.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오래된 구장이라도 동선이 몰리는 구간만 골라 리노베이션하면 체감 만족도를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계권과 스폰서십
에인절스는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중계권 시장의 혼란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기존 중계 파트너였던 FanDuel Sports Network의 모회사 메인스트리트스포츠그룹이 인수자를 구하지 못한 채 2026년 4월 사업을 접었기 때문입니다.
구단은 결국 메인스트리트가 보유하던 지분을 사들여 자체 소유 지역 채널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 여파로 2026시즌 선수단 연봉 총액은 1억 8,050만 달러(약 2,464억 원)로 전년도 2억 600만 달러(약 2,812억 원) 대비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모레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폭스에서 메인스트리트/FanDuel로 넘어갈 때 한 번 깎였고, 지금 또 깎이고 있다며 중계권 수익 감소를 연봉 축소의 직접적인 이유로 꼽았습니다.
중계권이라는, 팬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수익원이 결국 선수단 구성과 성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유니폼 소매 광고(저지 패치)는 2023년부터 건축자재 유통업체 파운데이션 빌딩 머티리얼스(FBM)가 달고 있습니다.
편백나무 로고를 에인절스의 빨강ㆍ파랑 팀 컬러로 그려 넣은 형태로, 계약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에인절 스타디움은 1998년 에디슨 인터내셔널과 20년짜리 네이밍라이츠(시설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계약을 맺었다가, 2003년 시즌 뒤 에디슨 측이 조기 종료 옵션을 행사하면서 이름을 되찾은 이력이 있습니다.
모레노가 구단을 인수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이 네이밍라이츠를 다시 팔지 않고 에인절 스타디움이라는 원래 이름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하니, 20여 년 넘게 이어진 이 원칙이 새 오너십 아래서도 유지될지는 지켜볼 대목입니다.
구장만의 상징 — 랠리 몽키
숫자 얘기만 하면 자칫 딱딱해지기 쉬우니, 이 구장만의 재미있는 전통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랠리 몽키(Rally Monkey)”입니다.
2000년 6월 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4-5로 뒤지던 9회말 경기 중 전광판 담당 직원 두 명이 즉흥적으로 영화 “에이스 벤츄라”에서 원숭이가 방방 뛰는 장면을 잘라내 “RALLY MONKEY!”라는 자막과 함께 틀었습니다.
그 경기에서 에인절스가 실제로 역전승을 거두자, 이 영상은 그날 이후 승부처마다 전광판에 등장하는 팀의 전통이 됐습니다.
나중에는 흰머리 카푸친 원숭이 “케이티”를 섭외해 힙합 곡 “Jump Around”에 맞춰 뛰노는 새 영상까지 따로 찍었고,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전광판 앞을 지키던 직원 두 명의 즉흥적인 장난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구단 고유의 자산이 됐다는 게, 마케터로서는 꽤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Troutfarm27 촬영(2023년 6월 10일) · CC BY-SA 4.0

출처: Wikimedia Commons, Sony 19th 촬영(2019년 6월 19일) · CC0 퍼블릭 도메인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국내에도 한 그룹이 여러 종목의 프로구단을 동시에 소유하는 사례는 있습니다.
삼성그룹이 대표적인데, 야구(삼성 라이온즈)와 축구(수원 삼성 블루윙즈), 배구(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구단을 계열사 형태로 함께 운영해온 이력이 있고, 한때는 남녀 농구단까지 거느렸습니다.
다만 크로엔키식 모델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삼성 산하 구단들은 전부 국내 리그 안에 머물러 있는 반면, 크로엔키는 미국 4대 프로스포츠 리그에 유럽 프리미어리그까지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포트폴리오를 짰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한 기업이 해외 리그 구단까지 동시에 보유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 점에서 크로엔키의 모델은 국내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스폰서십 파트너, 하나의 콘텐츠 IP를 여러 리그ㆍ여러 국가의 구단에 동시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건, 개별 리그 안에서만 마케팅을 설계해온 국내 구단 입장에서는 쉽게 그릴 수 없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40억 달러라는 숫자 자체도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거래가 성적이 나쁜 구단도 이렇게 비싸게 팔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에인절스는 10년 넘게 포스트시즌 근처도 못 갔던 팀인데도 포브스 평가액보다 40% 넘는 프리미엄을 받고 팔렸습니다.
결국 구단이라는 자산의 가치는 지금 성적이 얼마나 좋은가보다 이 시장, 이 브랜드, 이 부지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가로 매겨지고 있다는 뜻이겠죠.
크로엔키가 실제로 애너하임에 할리우드 파크 같은 개발을 밀어붙일지, 아니면 에인절 스타디움을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음에 이 구장을 다시 들여다볼 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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