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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뉴저지주 시코커스, 이 평범해 보이는 산업단지 한복판에 메이저리그 전체를 24시간 방송하는 채널의 본사가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큼지막하게 박힌 ‘MLB NETWORK’ 로고를 보고서야 이곳이 그 유명한 방송사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그냥 물류창고에 가까운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MLB 네트워크의 지분 구조
MLB 네트워크는 이름 때문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직접 운영하는 부서 정도로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메이저리그와는 법인이 분리된 별도의 합작 회사입니다.
지분 구조를 보면 메이저리그가 약 67%로 최대 주주이고, 나머지는 TNT 스포츠가 약 17%, 그리고 채리터 커뮤니케이션즈, 콕스 커뮤니케이션즈, NBC스포츠그룹이 각각 5%대씩 나눠 갖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1일 개국 당시에는 컴캐스트, 콕스, 다이렉TV, 타임워너케이블 등이 초기 지분 참여사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후 케이블 업계 재편과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지금의 주주 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리그가 지분의 과반 이상을 쥐고 있지만 나머지는 철저히 미디어·통신 사업자들의 합작 투자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내 방송실이 아니라 독립적인 미디어 기업에 가깝습니다.
MLB Tonight 스튜디오와 제작 인프라
본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MLB Tonight’ 스튜디오였습니다. 천장을 가득 채운 조명 리그와 지미집 카메라, 그리고 벽면을 뒤덮은 대형 LED 스크린들이 실시간으로 전 경기 스코어와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전 구단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해서 내보내는 이 프로그램이 채널의 심장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화면 하나하나에 타율, 평균자책점, WAR 같은 수치가 촘촘히 박혀 있는 걸 보면서 방송 제작 자체가 곧 데이터 산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스튜디오 42 — 재키 로빈슨의 42번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스튜디오 42’였습니다.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에서 이름을 딴 이 스튜디오는 실제 잔디와 흙을 그대로 들여와 야구장 인필드를 축소 재현해 놓았는데, 규모만 9,600제곱피트라고 합니다.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270평이 넘는 크기입니다.
벽면에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소속 구단 로고가 지구별로 나뉘어 붙어 있고, 실제 관중석 사진을 벽화처럼 둘러 배치해서 카메라에 잡히면 진짜 경기장 안에 있는 듯한 착시를 줍니다.
이 스튜디오 하나가 ‘MLB Park’라는 이름의 별도 세트로 운영되면서 드래프트 생중계나 시상식 같은 대형 이벤트를 소화한다고 하니, 방송사가 아니라 차라리 작은 야구장 하나를 통째로 실내에 지어놓은 셈입니다.
이 밖에도 5,600제곱피트 규모의 스튜디오, 8,000제곱피트 규모의 스튜디오21까지 갖추고 있는데, 이 정도 규모의 자체 제작 인프라를 리그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내 프로스포츠 마케터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참고로 MLB 네트워크는 2028시즌부터 뉴저지 엘름우드파크의 20만 7천 제곱피트 규모 신축 시설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하니, 지금도 압도적인 이 인프라가 앞으로 한 단계 더 커지는 셈입니다.

※ 직접 촬영한 사진이며, 인물 프라이버시를 위해 AI로 인물만 제거했습니다.
방송 커버리지와 콘텐츠 전략
방송 커버리지 범위도 상당했습니다. 자체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MLB Now’, ‘Quick Pitch’, ‘High Heat’, ‘Intentional Talk’ 같은 프로그램들이 매일 편성돼 있고, 중계권을 직접 보유하지 않은 평일 낮 경기까지 지역 방송사의 영상과 음성 피드를 받아 전국으로 내보내는 ‘MLB 네트워크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독특한 방식도 운영합니다.
여기에 자체 제작하는 주간 중계 ‘MLB 네트워크 쇼케이스’까지 더하면, 이 채널 하나가 뉴스, 하이라이트, 생중계, 아카이브, 드래프트, 윈터미팅까지 리그의 거의 모든 미디어 접점을 커버하고 있는 셈입니다.
2026시즌부터는 전국 단위 중계가 NBC, 넷플릭스, ESPN, FOX, TBS, 애플TV플러스까지 나뉘어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졌는데, 이런 파편화된 구조 속에서도 MLB 네트워크는 리그의 공식 채널로서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축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KBO와 비교해보면
이 모든 걸 둘러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KBO 상황과 비교하게 됐습니다.
국내는 방송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KBO는 지상파 3사와 3년간 1,620억 원 규모로 중계권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에 따라 하루 5경기 전 경기를 방송사가 직접 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중계 피드를 KBO가 활용할 수 있고, 방송사는 본인들 플랫폼에(뉴미디어 채널 제외)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리그나 구단 입장에서는 제작비 부담 없이 전 경기 중계를 보장받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KBO 자체에는 중계 제작의 노하우와 인프라가 거의 축적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MLB 네트워크처럼 리그가 스스로 카메라, 스튜디오, 데이터 시스템을 갖추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구조와는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겁니다.
KBO의 변화 조짐
다만 최근 흐름을 보면 KBO도 이 격차를 좁히려는 시도를 시작한 걸로 보입니다. 2025년 4월부터는 트랙맨 기반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화 중계 콘텐츠를 잠실과 광주 챔피언스필드 경기에 시범 적용하기 시작했고, 최근 방송사와의 중계권 계약에도 아카이브 영상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협조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습니다.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쌓고, 그 데이터를 활용한 중계 콘텐츠 제작 역량도 내재화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자체 제작 기술이 없으니 리그가 특정 경기나 특정 장면만 따로 잘라서 별도로 상품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KBO가 자체 제작 기술과 데이터 인프라를 확보하게 되면, MLB 네트워크가 아카이브 영상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재생산하듯이 특정 명경기나 특정 선수의 하이라이트만 따로 묶어 판매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이건 단순한 기술 내재화가 아니라 새로운 수익 모델을 여는 기회라서, KBO의 이 움직임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며
결국 MLB 네트워크가 보여준 건 리그가 방송사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할 때 어디까지 콘텐츠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인 사례였습니다.
KBO가 당장 이런 규모의 자체 방송사를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데이터와 제작 역량을 조금씩 내재화해가는 지금의 방향성만큼은 정확하다고 봅니다. 시코커스의 이 거대한 스튜디오 단지를 걸어 나오면서, 결국 콘텐츠 산업의 힘은 소유권에서 나온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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