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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아침, 축구 산업 뉴스를 훑어보다가 낯익은 이름 하나가 유니폼에서 사라진다는 소식이 있었네요.
리버풀 FC가 2027-28시즌부터 유니폼 메인스폰서를 터키항공으로 교체한다고 공식 발표한 겁니다. 2010년부터 17년째 리버풀 유니폼 가슴팍을 지켜온 스탠다드차타드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달 안필드를 다루면서 “2027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새 메인 스폰서를 물색 중”이라는 보도를 잠깐 언급했었는데, 채 한 달도 안 돼 실제 계약이 나온 셈이라 마케터로서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봤습니다.

출처: 리버풀FC 공식 홈페이지 발표 기사(2026년 9월 8일) · liverpoolfc.com 공식 발표 기사 · 구단 공식 이미지
메인스폰서 교체 — 5년 5,490억 원, 왜 이 정도 규모인가
새 계약은 2027년 6월 1일부터 5년간 이어지며, 총액은 3억 파운드(환율 약 1,830원/파운드 적용 시 약 5,490억 원), 연간으로 환산하면 6,000만 파운드(약 1,098억 원) 수준입니다.
리버풀 구단은 이 금액이 프리미어리그 역대 유니폼 프론트 스폰서십 중 최고가라고 자평했습니다(ESPN 보도).
기존 스탠다드차타드와의 계약은 2022년에 연장된 뒤 2026-27시즌까지 이어지는 조건으로 연간 약 5,000만 파운드(약 915억 원) 규모였으니, 연간 기준으로 약 183억 원가량 늘어난 셈입니다.
다만 스탠다드차타드가 완전히 손을 떼는 건 아닙니다. 유니폼 정면 자리에서는 내려오지만 2027-28시즌부터 ‘글로벌 파트너’ 지위로 전환해 관계를 이어간다고 구단이 밝혔습니다.
‘순수 유니폼 스폰서십’으로는 리그 최고가 — 에미레이츠·에티하드와 다른 점
흥미로운 건 단순 금액 비교로는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1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스널이 에미레이츠와 맺은 계약은 연간 7,000만 파운드(약 1,281억 원), 맨체스터 시티가 에티하드와 맺은 계약은 연간 6,750만 파운드(약 1,235억 원)로 리버풀의 6,000만 파운드보다 큽니다.
그런데 이 두 계약에는 유니폼 스폰서십뿐 아니라 스타디움 네이밍라이츠(시설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까지 함께 묶여 있습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에티하드 스타디움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계약의 일부인 셈입니다.
반면 리버풀-터키항공 계약은 순수하게 유니폼 앞면이라는 광고 인벤토리 하나만 놓고 맺은 계약이라, ‘유니폼 전용’ 계약만 놓고 보면 리버풀이 역대 최고액이라는 게 SI닷컴 등 스포츠비즈니스 매체들의 분석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스냅드래곤과 맺은 계약도 연간 6,000만 파운드 안팎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순수 유니폼 계약이라 리버풀과 비슷한 체급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포스팅(8월18일) 했듯이 리버풀은 지난 8월 지분 30% 매각 때도, 이번 스폰서 교체 때도 안필드라는 스타디움 이름만큼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출처: thisisanfield.com 보도 이미지(2026년 9월 8일)
터키항공이 리버풀을 택한 이유 — 2005년 이스탄불의 인연
왜 하필 터키항공일까 싶어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을 허브로 삼아 어느 항공사보다 많은 나라에 취항한다는 걸 강점으로 내세우는 회사입니다.
리버풀 공식 발표문에서 벤 래티 최고상업책임자(CCO)는 이번 파트너십에 ‘2005년의 특별한 기억에서 이미 단단한 토대가 쌓여 있었다’는 취지로 언급했는데, 이는 리버풀이 3-0으로 뒤지다 극적으로 우승한 2005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다름 아닌 이스탄불에서 열렸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아흐메트 올무슈투르 터키항공 최고경영자(CEO)도 발표문에서 리버풀의 세계적인 팬덤과 자사의 국제노선망이 만나는 지점을 강조했습니다.
터키항공은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바르셀로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같은 클럽과 스폰서십을 맺었던 이력이 있고, 2022-23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공식 스폰서로도 참여한 적이 있어, 이번 리버풀 계약이 축구를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게 월드풋볼서밋의 분석입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전 세계에 흩어진 리버풀 팬덤에 개별 시장마다 따로 광고할 필요 없이 한 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을 걸로 보입니다.

출처: 2005년 5월 26일, 이스탄불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고 리버풀 시내를 도는 오픈톱 버스 퍼레이드 장면 — 버스에 걸린 배너 속 유니폼에는 당시 스폰서였던 칼스버그 로고도 보입니다 · Wikimedia Commons(Jprw 촬영) · 라이선스: CC BY-SA 3.0
여섯 번째 이름 — 리버풀 유니폼 스폰서 47년사
이번 교체로 터키항공은 리버풀 유니폼 정면에 이름을 올리는 여섯 번째 기업이 됩니다. 1979년 히타치를 시작으로 크라운페인츠(1982~1988), 캔디(1988~1992), 칼스버그(1992~2010), 스탠다드차타드(2010~2027)로 이어져 온 47년 역사입니다.
재밌는 건 리버풀이 사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유니폼 스폰서 사례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에버턴이 덴마크 육가공업체 하프니아와의 계약을 며칠 먼저 발표했고, 리버풀-히타치 계약은 그 뒤를 이은 두 번째 사례였다는 게 블리처리포트의 정리입니다.
게다가 정작 그 시절엔 로고를 유니폼에 붙여도 TV 중계 화면에는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와 풋볼리그가 스폰서 로고의 TV 노출을 금지했던 규정이 1983-84시즌에야 풀렸기 때문인데, 지금 한 시즌에 수천억 원씩 오가는 유니폼 광고 시장의 출발점이 정작 화면에 나오지도 못하는 로고였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관중과 티켓
이번 스폰서 교체와 별개로, 안필드 자체의 마케팅 지표는 여전히 견조합니다. 2024년 안필드 로드 스탠드 확장 이후 수용 인원은 6만 1,276석으로 늘었고, 2024-25시즌에는 한 경기 6만 420명이 들어찬 기록도 나왔습니다.
리버풀은 일반 판매 대신 “올 레드 멤버십” 등급별 응모를 통해서만 시즌 홈경기 티켓 자격을 주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2026-27시즌 기준 시즌권 가격은 메인스탠드 최고가 931파운드(약 170만 원)부터 콥 스탠드 외곽 최저가 734.5파운드(약 134만 원) 사이입니다.
좌석은 늘었는데 정작 표를 구하기는 여전히 까다롭다는 게 최근 안필드를 다녀온 이들의 공통된 후기입니다.

출처: 2026년 1월 촬영된 안필드 매치데이 전경, 워밍업 중인 선수들과 만원 관중석이 함께 보입니다 · Wikimedia Commons(Alan Murray-Rust 촬영, geograph.org.uk) · 라이선스: CC BY-SA 2.0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이번 소재를 국내 리그와 비교하면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유니폼 스폰서 시장”이라는 것 자체의 존재 여부였습니다.
KBO나 K리그 상위권 구단 대부분은 유니폼 앞면 스폰서 자리에도 결국 구단을 소유한 모기업 브랜드가 들어갑니다 — 예를 들어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에는 포스코 계열 브랜드가, 전북 현대모터스 유니폼에는 현대자동차 계열 브랜드가 자리하는 식입니다.
리버풀처럼 구단 소유와 무관한 외부 기업 여러 곳이 앞다퉈 경쟁하고, 몇 년마다 계약 규모가 갱신되며 몸값이 뛰는 “진짜 시장형 유니폼 스폰서십”은 국내에서는 아직 흔치 않은 그림입니다.
물론 리그 전체 매출 규모 자체가 다른 만큼 1대1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유니폼 정면이라는 같은 광고 인벤토리 하나를 두고도 국내외 시장의 성숙도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됐습니다.
17년을 지켜온 스폰서가 물러나는데도 정작 구단이 애써 강조한 건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를 완전히 내보내지 않고 글로벌 파트너로 남겨두면서, 새 파트너는 20년도 더 된 2005년의 인연을 소환해 관계를 시작하는 방식 말입니다. 큰돈이 오가는 계약일수록 오히려 이야기와 역사를 붙여 파는 게 스폰서십 마케팅의 기본기라는 걸 다시 확인한 사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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