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문을 연 토트넘 홋스퍼의 새 홈구장은 개장 첫날부터 다른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19경기에 국내컵과 유럽대항전 홈경기를 더해도 실제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은 한 시즌에 많아야 30일 안팎이고, 나머지 335일가량은 그냥 비워둔다는 게 기존 구장들의 상식이었는데, 토트넘은 이 상식을 설계 단계부터 뒤집었습니다.
총 사업비 약 10억 파운드를 들인 이 구장을 뜯어보면, 경기장이라기보다 축구를 중심에 둔 복합 수익 시설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자료출처 : tottenhamhotspur.com(구단 공식 홈페이지)
공간 구성부터 숫자가 남다릅니다. 좌석 62,850석으로 런던에서 가장 큰 클럽 구장이고, 관중석과 터치라인 사이 거리가 4.9미터에서 7.9미터에 불과해 비슷한 규모 구장 중 가장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7,500석 규모의 단일층 South Stand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단일층 스탠드로, 높이만 34미터에 달하고 5,000석의 세이프 스탠딩 좌석이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분리형 리트랙터블 인조잔디를 얹어서, 25분 만에 축구 경기장을 NFL 미식축구 경기장으로 바꿀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 하나의 장치 덕분에 토트넘은 2019년부터 매년 최소 2경기의 NFL 정규시즌 경기를 유치해왔고, 최근 NFL과 2029~2030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하면서 이 수익원을 더 길게 확보했습니다.

자료출처 : https://populous.com/
상품(MD) 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토트넘 익스피리언스’라는 이름의 메가스토어입니다. 면적이 23,000제곱피트,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약 640평에 달하는데, 유럽 스타디움 안에 들어선 매장 중 가장 넓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냥 큰 매장이 아니라 100석 규모 오디토리움과 36개 화면으로 구성된 비디오월을 갖춘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설계했고, 매치데이 전후로 팬 미팅이나 프로모션 행사를 이 안에서 직접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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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건물 자체도 1910년 지어진 그레이드Ⅱ 등재 건축물인 워밍턴 하우스의 파사드를 그대로 복원해서 지었다고 하니, 소매 공간 하나에도 브랜드 헤리티지를 입히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매장에서는 레플리카 유니폼 커스터마이징은 물론 NFL 경기나 콘서트 같은 비축구 이벤트 전용 한정판 굿즈까지 판매합니다.

자료출처 : tottenhamhotspur.com(구단 공식 홈페이지)
광고 인벤토리 운용 방식은 오히려 ‘안 파는 전략’이 흥미롭습니다.
다니엘 레비 회장은 2019년 개장 당시 시즌당 2,500만 파운드, 15년 계약 기준 총 3억 7,500만 파운드 규모의 네이밍라이츠 계약을 원했다고 합니다.
세계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 네이밍라이츠 계약을 노린 셈인데, 6년이 넘도록 이 조건에 응하는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았고 최근에는 눈높이를 총액 2억~2억 5,000만 파운드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장 이름 위에 스폰서 명을 올리지 못했는데, 대신 최근에는 ‘더 컬렉티브’라는 이니셔티브를 새로 만들어서, 구장 전체 네이밍라이츠 대신 스탠드마다 개별 파트너십을 파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티켓츠와 맺은 계약이 이 방식의 첫 사례입니다. 실제로 나이키, HSBC, AIA, 세일즈포스, HPE, 벳MGM, 몬스터에너지, 캐드버리 등 20개가 넘는 공식 파트너 로고가 구장 곳곳에 노출되고 있는데, 하나의 대형 계약에 의존하기보다 인벤토리를 잘게 쪼개 다각화한 셈입니다.
팬 편의 측면에서는 전면 캐시리스 운영이 기본입니다. 구장 어디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고 카드와 애플페이, 구글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만 사용하는데, 결제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위생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설명입니다.
공식 앱은 웨이파인딩, 좌석에서 셀피를 찍어 공유하는 ‘팬캠’ 기능, 디지털 티켓까지 갖추고 있어서 입장부터 퇴장까지 매치데이 전체를 안내합니다.
음식 쪽은 60개가 넘는 매장이 런던의 스트리트푸드 신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홍보하는데, 플랜트 베이스드 메뉴를 전 매장에 배치했고, South Stand의 ‘마켓 플레이스’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65미터 길이의 바까지 들어서 있습니다.
미쉐린 스타 셰프들이 매치데이 프리미엄 다이닝에 참여하는 것도 특징인데, 오뎃츠의 브린 윌리엄스, 인도 요리 전문 디프나 아난드, 루 가문까지 각자 다른 메뉴를 맡고 있고, 이 모든 다이닝을 265명의 셰프와 1,600명의 바 스태프가 나눠서 운영한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IT·데이터 활용도 눈여겨볼 지점입니다. 토트넘은 HPE, 스캘리티 같은 기술 기업과 스마트 스타디움 파트너십을 맺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 소스를 가진 스타디움’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쓰고 있습니다.
구단 관계자는 데이터와 분석, 인텔리전스를 매출 확대의 ‘액셀러레이터’라고 표현했는데, 궁극적으로는 팬 경험을 끌어올리는 도구로 이 데이터를 쓴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 100% 재생에너지로 구장을 운영하고 매립 폐기물 제로 정책, 재사용 맥주컵 제도까지 갖추면서 지속가능성까지 상업적 스토리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숫자도 상당합니다. 스타디움 투어와 ‘더 데어 스카이워크’ 같은 방문객 시설, 콘퍼런스·이벤트 공간까지 더하면 연간 약 200만 명이 이 구장을 찾고, 지역 경제에는 연간 3억 4,400만 파운드의 파급 효과를 낸다고 구단이 밝히고 있습니다.
2026년 7월에는 BTS가 이틀간 콘서트를 열어 총 13만 명을 동원하면서 2019년 개장 이래 단일 공연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썼는데, 축구 구단이 K팝 그룹의 콘서트 최다 관중 기록을 보유한 공간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구장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설계와 운영 면에서도 2019년 빌딩 어워즈 올해의 프로젝트, 2021년 RIBA 내셔널 어워드, 2020년 스타디움 비즈니스 어워즈 올해의 베뉴 등 개장 이후 12개가 넘는 업계 상을 받았습니다.
국내 프로스포츠와 비교해보면 시사점이 뚜렷합니다. KBO나 K리그 구장 대부분은 여전히 매치데이 매출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라서, 경기가 없는 날 구장이 수익을 만드는 사례는 아직 드뭅니다.
토트넘처럼 매치데이 외 335일을 채우는 설계는 부지 확보나 소음 규제, 인근 주민 민원 같은 국내 현실 여건상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지만, 방향성만큼은 참고할 만합니다.
특히 네이밍라이츠를 통째로 파는 대신 스탠드나 구역 단위로 광고 인벤토리를 잘게 쪼개 파는 ‘더 컬렉티브’ 방식은, 국내 구단들의 모기업 스폰서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방향과 같습니다. 구단 스스로의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모기업 스폰서 의존도를 낮추고 광고 매출원을 다변화하는 데 바로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봅니다.
640평 규모의 메가스토어를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오디토리움과 비디오월을 갖춘 체험형 콘텐츠 공간으로 설계한 발상도, 상품 MD를 여전히 매대 진열 위주로 운영하는 국내 구단 상당수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축구장이라는 틀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수익 구조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국내 여건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광고 인벤토리를 세분화하는 방식이나 상품 판매 공간을 콘텐츠화하는 접근만큼은 국내 구단이 단계적으로 시도해볼 만한 지점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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