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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휴대폰 사진첩에는 흰 글씨로 ‘Comerica PARK’라고 적힌 구장 입구 간판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습니다.
궂은 비로 경기가 좀처럼 시작되지 않던 날 구장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찍은 사진인데, 지난 7월 이 블로그에 올린 코메리카 파크 후기에도 이 사진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 간판이 이번 겨울 내려갑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피프스 서드 은행은 현지시간 9월 21일 구장 그라운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7시즌부터 구장 이름을 ‘피프스 서드 파크(Fifth Third Park)’로 바꾼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구장은 한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후속편을 쓰기로 했는데,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직접 다녀와서 후기를 남긴 구장의 이름이 바뀌면 지난 글은 곧 옛날 정보가 됩니다.
내년에 디트로이트를 찾는 독자가 ‘코메리카 파크’로 검색해 들어왔다가 헷갈리지 않도록, 바뀐 사실을 정리해 둘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둘째, 이번 개명은 스폰서가 계약을 끝내고 다른 기업이 새로 이름을 사는 흔한 경우가 아닙니다.
이름을 산 은행 자체가 다른 은행에 합병되면서 네이밍라이츠(시설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가 통째로 넘어간 경우라, 현직 마케터로서 꼭 기록해 두고 싶은 드문 사례입니다.
셋째, 발표 직후 찾아보니 이 소식을 정리한 한국어 글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첫 편이 비 오는 날의 현장 경험이었다면, 이번 편은 그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넘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메리카 파크 정문 간판(2024년 4월 필자 촬영) · 직접 촬영 사진으로 지난 7월 후기에 실린 사진과 같은 파일이며, 인물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AI로 제거함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시작은 1998년 12월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한 지역 은행 코메리카가 새 구장의 네이밍라이츠를 30년간 6,600만 달러에 사들였고, 구장은 2000년 4월 ‘코메리카 파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연평균으로 치면 220만 달러꼴입니다.
원래 2029년 말까지였던 계약은 2018년 코메리카가 연장 옵션을 행사하면서 2034년까지 늘어났습니다.
당시 은행 측은 이 스폰서십 덕분에 주요 시장은 물론 미국 전역에서 이름이 알려졌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변수는 은행 쪽에서 생겼습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피프스 서드 은행이 2025년 10월 코메리카 인수를 발표했고, 전액 주식 교환 방식으로 약 109억 달러 규모였던 이 합병은 2026년 2월 2일 마무리됐습니다.
합병으로 피프스 서드는 자산 약 2,940억 달러, 미국 9위 은행이 됐습니다.
구장 이름은 자연스럽게 새 주인의 몫이 됐고, 피프스 서드 측은 기존 계약 기간을 그대로 이어받는다고 밝혔습니다.
금액과 기간을 새로 협상한 신규 계약이라기보다 이름표만 바꿔 다는 ‘승계’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간판은 이번 비시즌 동안 교체되고, 새 이름으로 치르는 첫 홈경기는 2027년 3월 2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입니다.
MLB.com은 지금 홈구장에서 이름을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코메리카 파크보다 오래 뛴 메이저리그 구단이 9곳뿐이라고 짚었습니다.
펜웨이 파크, 리글리 필드, 다저 스타디움 같은 이름들과 나란히 설 만큼 26년 넘게 한 이름을 지켜온 셈입니다.
은행 합병으로 구장 이름이 바뀐 전례도 있습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 ‘뱅크 원 볼파크’는 뱅크 원이 JP모건 체이스와 합병하면서 2005년 체이스 필드가 됐고, 팬들이 부르던 애칭 ‘BOB’도 그때 함께 사라졌습니다.
관중과 티켓 — 이름값이 가장 높을 때 바뀌는 이름
타이밍만 놓고 보면 새 스폰서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베이스볼 알머낵 집계로 타이거스 홈 관중은 2024년 185만 8,295명에서 2025년 241만 3,442명으로 약 30% 늘었고, 경기당 평균도 2만 9,796명까지 올라왔습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효과인데, 2025년에는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를 꺾고 디비전시리즈에서 시애틀과 5차전 15이닝 승부까지 갔습니다.
CNBC는 2026년 타이거스 구단 가치를 전년보다 21% 오른 19억 3,000만 달러, 매출을 9% 늘어난 3억 5,600만 달러로 추정하면서 관중 증가를 그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다만 역대 최다였던 2008년 320만 2,654명과 비교하면 아직 올라갈 여지가 있는 수준입니다.
올해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무산되면서 9월 2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이 ‘코메리카 파크’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가 될 전망입니다.
관중이 막 다시 불어난 시점에 이름이 바뀐다는 건, 새 이름이 처음부터 꽉 찬 관중석 위에 걸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네이밍라이츠를 사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첫 무대가 드뭅니다.
공간 활용·F&B와 중계권 — 이름보다 먼저 바뀐 것들
구장을 운영하는 일리치 스포츠 앤드 엔터테인먼트는 2026시즌을 앞두고 다년간 2억 달러 규모의 시설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경기당 24명만 받는 프리미엄 공간 ‘프레스 클럽’을 새로 만들었고, 경기 단위로만 예약받던 ‘타이거 클럽’은 1인당 경기당 99달러부터 시작하는 시즌 멤버십으로 바꿨습니다.
반대쪽 끝에는 가성비 메뉴가 있습니다.
핫도그·감자칩·음료 세트가 9.42달러, 12온스 캔맥주가 5달러이고, 화요일에는 핫도그를 3달러에 팝니다.
프리미엄석과 저가 메뉴를 동시에 넓히는 건 관중층을 위아래로 함께 붙잡으려는 전략으로 읽힙니다.
중계 쪽 변화는 더 컸습니다.
타이거스 경기를 중계하던 지역 스포츠 채널 FanDuel Sports Network Detroit가 모회사의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타이거스는 올 시즌부터 MLB 미디어 조직이 제작하는 디트로이트 스포츠넷으로 옮겼습니다.
월 19.99달러(연 189달러)에 타이거스와 레드윙스 경기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구장 이름, 중계 채널, 전광판 간판까지 불과 2년 사이에 팬이 매일 보는 접점이 줄줄이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광고 인벤토리 — 전광판 위 간판은 2년 만에 또 바뀐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좌측 외야 전광판 꼭대기입니다.
제가 2024년 4월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자리에 주황색 필기체 ‘Tigers’ 간판이 올라가 있습니다.
2012년 설치돼 색이 바뀌거나 호랑이 줄무늬가 흐르던 간판인데, 구단은 2025년 3월 이 간판이 기계적으로 수명을 다했다며 흰 글씨 ‘Comerica Park’ 간판으로 교체했습니다.
팀을 상징하던 자리에 은행 이름이 올라가자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타이거스가 코메리카는 아니지 않느냐는 불만이 꽤 나왔습니다.
그 간판이 불과 두 시즌 만에 다시 내려가게 된 겁니다.

2024년 4월, 전광판 위에 필기체 ‘Tigers’ 간판이 있던 시절(필자 촬영) · 직접 촬영 사진, 그라운드 관리 인력이 작게 찍혀 있음
현지의 한 직관 후기 블로거는 경기 내내 색과 무늬가 바뀌던 이 필기체 간판 가운데 호랑이 줄무늬 버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그 후기를 읽고 제 사진을 다시 꺼내 보니, 구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스폰서 이름에 내주는 결정이 팬들에게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메리카 입장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합병이 진행된 셈이니 아쉬운 타이밍입니다.

2026년 5월 16일 토론토전, 전광판 위에 ‘Comerica Park’ 간판이 올라간 모습 · 촬영 42-BRT,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피프스 서드가 구장에 처음 들어오는 이름은 아닙니다.
구장 출입구 한 곳은 이미 ‘피프스 서드 엔트리’라는 VIP 게이트로 운영되고 있었고, 피프스 서드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파크 퍼크스’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광고 인벤토리(구장 안에서 광고주에게 팔 수 있는 노출 지면과 권리)로 보면, 게이트 하나를 쓰던 스폰서가 구장 전체의 이름으로 올라선 구조입니다.
반대로 올 시즌 일정표를 보면 ‘블랙 인 베이스볼’ 주말 행사와 5월 크루넥 증정 행사가 여전히 코메리카 명의로 잡혀 있었는데, 이런 코메리카 이름의 소소한 스폰서 자산들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비시즌 과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타이거스 조직 안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트리플A 산하 톨레도 머드헨스는 2002년 개장 때부터 ‘피프스 서드 필드’를 홈으로 쓰고 있고, 하이A 산하 웨스트미시간 화이트캡스도 2021년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약 20년 동안 ‘피프스 서드 볼파크’에서 뛰었습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올라온 선수라면 경력 내내 같은 은행 이름 아래서 뛰는 셈입니다.
새 이름을 ‘필드’가 아닌 ‘파크’로 정한 것도 MLB.com 설명대로 톨레도 구장과 이름이 겹치지 않게 하려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타이거스 트리플A 산하 톨레도 머드헨스의 홈구장 피프스 서드 필드 정문(2022년 4월) · 촬영 MrJacon000,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시즌 마지막 홈경기 기간에는 피프스 서드와 구단이 사진 촬영 이벤트, 그리고 앞으로 나올 타이거스 직불카드 디자인을 팬 투표로 정하는 행사를 엽니다.
은행 네이밍라이츠가 결국 계좌와 카드로 이어져야 본전을 뽑는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 꽤 솔직한 액티베이션(스폰서가 계약한 권리를 실제 팬 접점 행사로 풀어내는 활동)입니다.
피프스 서드는 합병 뒤 미시간과 디트로이트 모두에서 소매 예금 1위 은행이 됐다고 밝혔는데, 같은 발표 자료에 디트로이트 두 개 동네에 2,000만 달러를 투입하는 지역 투자 계획을 함께 담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팬 반응 — 그래도 난 타이거 스타디움이라 부르겠다
현지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디트로이트 출신 록 뮤지션 잭 화이트는 발표 당일 인스타그램에 새 이름은 발음하기도 싫다며, 타이거스가 어디서 뛰든 자기는 ‘타이거 스타디움’이라고 부르겠다고 적었습니다.
타이거 스타디움은 타이거스가 1912년부터 1999년까지 홈으로 쓰던 옛 구장입니다.
지역 방송 인터뷰에 응한 팬들의 반응도 이름이 입에 붙지 않는다는 쪽과 그래도 새 파트너가 뭘 할지 기대된다는 쪽으로 엇갈렸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일부러 코메리카 파크의 마지막 시즌을 보러 왔다는 가족도 있었습니다.
사실 코메리카 파크도 오랫동안 타이거 스타디움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구장 리뷰 블로거는 코메리카 파크가 “타이거 스타디움이 아니라는 것”만 빼면 거의 모든 걸 잘한다고 평하면서, 많은 타이거스 팬들이 여전히 옛 구장과 비교하며 새 구장을 낮춰 본다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26년이 지나는 동안 ‘코파(CoPa)’라는 약칭과 넓은 외야 때문에 붙은 ‘코메리카 국립공원’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으니, 이제 겨우 정이 붙은 이름을 다시 내려놓는 셈입니다.
이런 후기들을 읽다 보니 스폰서 이름이라도 한 세대가 지나면 결국 그 동네 사람들의 기억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미시간대 스포츠마케팅연구센터의 한 교수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팬들이 새 이름에 익숙해지려면 확실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피프스 서드’라는 독특한 은행 이름 자체가 합병에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1908년 신시내티의 서드 내셔널 뱅크와 피프스 내셔널 뱅크가 합쳐지면서 두 이름을 그대로 이어 붙였고, 금주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순서를 바꾼 ‘서드 피프스’는 술병 세 병을 뜻하는 말처럼 들린다며 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잭 화이트가 은행 이름을 도대체 누가 지었냐고 비꼰 것도 이 이름 때문인데, 합병으로 생긴 이름이 118년 뒤 또 다른 합병을 타고 디트로이트 구장 꼭대기에 올라가는 셈입니다.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한국 프로야구에도 기업 사정에 따라 이름이 바뀐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 구장보다 구단 이름이 바뀌는 쪽이 더 익숙합니다.
히어로즈는 2019년 메인 스폰서가 넥센타이어에서 키움증권으로 바뀌면서 ‘넥센 히어로즈’가 ‘키움 히어로즈’가 됐습니다.
당시 계약은 5년 총액 약 500억 원(연 100억 원 규모)이었고, 2023년에는 2028년까지 5년 더, 최소 550억 원에서 인센티브를 포함해 최대 695억 원 규모로 연장됐습니다.
금융회사가 이름을 사서 고객 접점을 넓힌다는 점에서, 구장 이름을 예금과 카드 고객으로 연결하려는 피프스 서드와 발상이 닮아 있습니다.
2021년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를 1,353억 원에 인수하면서 팀 이름을 ‘SSG 랜더스’로, 인천 문학 구장 이름을 ‘SSG랜더스필드’로 바꾼 것은 주인이 바뀌며 이름이 통째로 바뀐 경우입니다.
차이는 전환 방식에 있습니다.
두 국내 사례는 발표와 교체가 모두 비시즌 안에서 이뤄졌습니다.
반면 타이거스와 피프스 서드는 시즌 마지막 홈경기 기간에 먼저 발표하고, 남은 경기는 옛 이름으로 치러 팬들이 작별할 시간을 준 뒤, 비시즌에 간판을 바꿉니다.
이름은 계약서상으로는 권리이지만, 팬들에게는 추억이 쌓인 장소의 이름입니다.
스폰서가 바뀌는 순간은 새 이름을 알리는 기회이면서 옛 이름을 떠나보내는 의식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앞으로 구장이나 구단 이름이 바뀌는 일이 생긴다면, 새 로고를 공개하는 것만큼이나 마지막 시즌을 어떻게 기념할지부터 기획해 두면 좋겠다는 게 현직 마케터로서의 생각입니다.
비 오는 날 찍은 그 입구 사진은 이제 코메리카 파크 시절을 기록한 사진이 됐습니다.
내년 이맘때쯤 같은 자리에 ‘Fifth Third Park’ 간판이 걸리면, 디트로이트 팬들이 그 이름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지 다시 한번 챙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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