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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이 그라운드 위에서. 야구장이 응원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가 되는 순간입니다.
KBO 리그의 이번 시즌 관중 추이를 챙겨보다가, 정작 그 숫자를 만들어낸 사람들 이야기는 의외로 잘 안 다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에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유례없는 휴식기를 맞았고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이 무더위에 선수들, 팬들 많이 힘드시지만 그에 못지 않게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년 시즌 초가 되면 신인 선수, 새 감독, 리모델링한 구장 이야기는 쏟아지는데, 정작 3시간 넘게 목이 쉬도록 그라운드를 등지고 서서 관중을 지휘하는 응원단장들 이야기는 잘 조명되지 않습니다.
현직 마케터 입장에서 이번만큼은 이 열 명의 응원단장들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KBO는 2025시즌 누적 관중 1,231만 2,519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2년 연속 기록 경신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시즌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7월 19일 기준 역대 최소 경기(443경기)만에 800만 관중을 넘어섰고, 언론에서는 시즌이 끝날 때쯤엔 사상 처음으로 1,300만 관중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숫자는 아니지만, 그 페이스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숫자보다 오래된 진심
이 흥행의 밑바닥에는 매 경기 관중석 맨 앞에 서서 3시간을 버티는 응원단장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몇은 정말로 한 팀만 바라보며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조지훈 단장은 2006년부터 사직구장 단상에 서 왔습니다.
올해로 20년째, 선수 개인마다 응원가를 붙이는 방식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것도 그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단장은 2000년 마스코트로 시작해 올해로 활동 24년째를 맞았습니다.
2013시즌부터는 마스코트 탈을 벗고 본명으로 응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 한재권 단장은 2014년부터, 기아 타이거즈 서한국 단장은 2016년 6월부터 각각 자기 팀 단상을 지키고 있으니 두 분 다 10년을 훌쩍 넘긴 셈입니다.
kt wiz 김주일 단장은 조금 특별한 경우인데, 기아에서 11년을 일하다 2015년 kt wiz 창단과 함께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팀을 옮기긴 했지만 응원단장으로서의 경력만 놓고 보면 국내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고참에 속합니다.
단언컨데 kt wiz는 창단때부터 함께한 김주일 단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응원문화나 위즈파크의 100만 관중을 달성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마다 열리는 KBO 올스타전은 10개 구단 응원단이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자리가 전부 10~20년 경력자들의 것만은 아닙니다.
세대교체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NC 다이노스는 2025시즌부터 임종덕 단장이 세 번째 응원단장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키움 히어로즈는 같은 해 4월 12년간 자리를 지켰던 전임자 대신 박승건 단장을 새로 세웠는데 그가 지금 KBO 리그 최연소 응원단장입니다.
SSG 랜더스 박민수 단장과 LG 트윈스 이윤승 단장도 각각 2022년, 2021년부터 지금 팀의 단상에 섰습니다.
오래 지킨 사람과 이제 막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 문화가 어느 한 개인기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2019년 도쿄돔, 사비를 털고 날아간 이유
이 열 분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했던 대목이 있습니다.
2019년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12 당시의 한 현장 기사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단장은 텔레비전으로 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다 한국 쪽 관중석이 텅 비어 있는 걸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훗날 밝혔습니다.
당시 배구단 소속으로 있던 이윤승 단장(지금은 LG 트윈스를 이끌고 있습니다)도 망설임 없이 짐을 쌌습니다.
KBO가 초청한 것도, 경비를 지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각자 사비를 들여 항공권을 끊었습니다.

2019년 프리미어12 당시 도쿄돔. 응원단은 KBO 소속이 아니라 각자 소속팀 유니폼을 벗고 태극마크를 달고 섰습니다.
다음 날 결승전에는 두산 베어스 한재권 단장과 kt wiz 김주일 단장까지 합류했습니다.
슈퍼라운드 경기 표는 이미 매진된 뒤라 발만 동동 굴러야 했고, 결승전은 그나마 KBO의 협조를 얻어 겨우 현장 응원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문화가 다른 나라다 보니 조심할 것도 많았습니다.
단상 자체가 없었고, 앰프 같은 응원 장비는 반입이 안 됐으며, 허용된 건 호루라기와 북 정도였는데 그마저 밤 10시가 넘으면 쓸 수 없었습니다.


결승전 현장 응원이 가능해지기까지, 낯선 나라의 구장 관계자들과 하나하나 협의해야 했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응원가도 마음껏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인터뷰에는 아쉬움보다 다짐이 담겨 있었습니다.
언젠가 정식으로 꾸려진 ‘한국 대표 응원단’이 생기는 게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결승전 당일 도쿄돔 관중석. 매진된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는 사연이 무색하게, 현장 응원 열기만큼은 뜨거웠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지금, 그 바람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KBO는 2025년 11월 일본 평가전과 2026년 WBC 본선 도쿄돔 원정경기에 공식 원정 응원단을 파견하고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의 그 자발적인 걸음이 이후의 변화를 직접 만들어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그날 도쿄돔 외야석에서 사비를 들여 목청을 높였던 이들이 그리던 그림과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날씨와 시간을 열정으로 넘어서는 사람들
응원단장들의 하루는 경기 시작 훨씬 전부터 시작됩니다.
SSG 랜더스 박민수 단장은 홈경기 이벤트 미팅이 열리는 시간보다도 30분 먼저, 그러니까 경기 3시간 전에 구장에 도착한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아마 모든 구단의 응원단장이 비슷할 겁니다.
비가 오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나 이 루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날씨 자체를 응원의 소재로 삼는 순간도 있습니다.
여름밤 관중석을 향해 대형 물대포를 쏘아 올리는 이벤트가 대표적인데, 무더위에 지친 관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장치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가 됩니다.

무더운 여름밤 경기에서 펼쳐지는 kt wiz워터페스티벌 응원 이벤트. 관중이 지쳐갈 때쯤 응원단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NC 다이노스 임종덕 단장은 지난해 프로야구 무대에 처음 데뷔하면서 응원가를 새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걱정이 앞서 5킬로그램이 빠졌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흥행 성적이나 우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들에게는 매 경기가 곧 무대이자 시험대인 셈입니다.
한화 이글스 홍창화 단장은 1999년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 장면을 보고 팬이 된 게 계기가 되어 2006년부터 지금 자리에 섰는데, 성적이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관중석 맨 앞을 지켜온 세월이 곧 그 팀의 부침과 겹쳐집니다.
팀 성적이라는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루틴을 지킨다는 것, 마케터로서 보면 이보다 더 꾸준한 현장형 팬 관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직접 만들고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응원가와 율동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LG 트윈스 이윤승 단장이 이끄는 응원가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kt wiz 김주일 단장은 정성스럽게 만든 응원가가 관중들이 큰 목소리로 불러줄 때 많은 보람과 전율을 느낀다고 합니다.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단장은 KBO 리그 전반에 걸쳐 음원 저작권 문제로 기존 응원가를 쓸 수 없게 되자 직접 나서 선수별 응원가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중 한 선수의 응원가는 특유의 멜로디와 율동으로 2019년 KBO 올스타전에서 열 개 구단 팬이 한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조지훈 단장이 20년 전 국내 최초로 선수 개인별 응원가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문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K-응원문화가 만든 산업
현직 마케터로서 이들과 함께하며 다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KBO의 흥행은 좋은 경기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231만 관중이라는 숫자, 그리고 1,300만을 향해 가는 지금의 페이스는 야구장을 단순한 경기 관람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 콘텐츠의 연출자이자 진행자가 바로 응원단장들입니다.
해외 스포츠 마케팅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한국 야구장의 응원 문화가 해외 스포츠 매체나 관계자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결국 매 경기 관중석 맨 앞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는 이 열 명의 손끝이 있습니다.

성적도, 날씨도, 비용도 이들의 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려한 스코어보드 뒤에서 관중의 목소리를 지휘해 온 사람들에게 늦게나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응원단장들은 한 구단의 응원단장이라는 직장인이지만 어느 직장인 보다 열정이 더 확고한 사람이며, 지금의 흥행을 이끌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처우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두산 베어스 한재권, kt wiz 김주일, LG 트윈스 이윤승, 키움 히어로즈 박승건, SSG 랜더스 박민수, NC 다이노스 임종덕, 롯데 자이언츠 조지훈, 한화 이글스 홍창화, 삼성 라이온즈 김상헌, 기아 타이거즈 서한국.
이 무더위에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구장에서 관중석을 지휘하고 있을 열 분의 이름을 한 분씩 적어봅니다.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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