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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구단 마케팅을 오래 하다 보면 “이 구단은 왜 이렇게까지 스타 선수를 안 사들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는 클럽이 하나 둘 생깁니다.
스페인 라리가의 아틀레틱 빌바오가 저에게는 오랫동안 그런 존재였습니다.
라리가 2026-27시즌 개막(8월 14일)을 앞두고 이 구단의 소시오(회원) 대기자가 1만 1천 명을 넘어섰다는 현지 보도를 접하고, 마침 궁금증을 풀어볼 겸 리서치를 시작했습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1898년 창단 이후, 비스카야·기푸스코아·알라바 등 이른바 “대(大) 바스크”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서 축구를 배운 선수만 기용하는 정책을 1911년부터 규정으로 못박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완성된 스타를 사 오는 대신 칸테라(유소년 아카데미로 키운 선수단이라는 뜻의 스페인 축구 용어)와 인근 바스크 클럽 출신 선수만으로 스쿼드를 꾸리는 구조인데, 이 정책 때문에 지금까지 아틀레틱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국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틀레틱은 1929년 라리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부로 강등된 적이 없는 세 클럽 중 하나입니다(나머지 둘은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스타를 사지 않고도 리그 최상위권 정체성을 지켜온 클럽이라는 뜻이라, 마케터 입장에서는 “브랜드 자산이 선수단이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인 특이 사례로 보였습니다.
팬과 회원(소시오)
아틀레틱의 홈구장 산 마메스는 1913년 스페인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 구조물은 2013년 재건축을 거친 두 번째 산 마메스입니다.
좌석 수는 53,331석이며, 이 중 시즌권 소지자가 약 4만 4천 명에 달해 일반 판매분은 8천 석 안팎에 그칩니다.
일반 입장권 최저가는 10유로 수준이지만, 리셀 시장에서는 평균 96유로까지 뛴다는 통계도 있어 수요 대비 공급이 얼마나 빠듯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틀레틱은 스페인 라리가에서 기업이 아니라 회원(소시오)이 소유·운영하는 4개 구단 중 하나입니다(나머지는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오사수나).
소시오 자격을 얻으면 회원증이 곧 시즌권 역할을 겸하고, 4년마다 열리는 총회에서 직접 투표로 회장과 이사진을 뽑을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소시오가 되려는 대기자만 2026년 8월 기준 1만 1천 명을 넘어섰다는 현지 매체 보도가 있었습니다.
산 마메스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수요라는 뜻인데, 구단은 이 부담을 덜기 위해 최근 시청에 좌석을 2,440석 늘려 5만 6,008석까지 확장하는 증축안을 제출했습니다.
총사업비는 52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80억 원) 수준으로, 3층 관중석 뒷줄 재배치와 프레스존 이전에 예산 대부분이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네르비온 강변에서 바라본 산 마메스 전경 · 출처: Mikel Arrazola, Wikimedia Commons, CC BY 3.0
광고 인벤토리와 스폰서십
셔츠 스폰서 이력을 보면 아틀레틱의 색깔이 더 뚜렷해집니다.
이 구단은 2008년까지 셔츠에 어떤 기업 로고도 붙이지 않는 전통을 지켰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정유사 페트로노르가, 2015-16시즌부터는 지금의 메인 스폰서인 쿠차은행(빌바오에 본사를 둔 바스크 지역 은행)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스포츠비즈니스 전문매체 스포트칼은 이 계약 규모를 연간 약 475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하는데, 레알 마드리드(아디다스, 연 1억 2천만 유로)나 FC바르셀로나(나이키, 연 1억 유로 이상) 같은 라리가 최상위권 계약과 비교하면 소박한 편입니다.
다만 쿠차은행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 노출 효과보다는 지역 정체성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에 가깝다는 점에서, 광고 인벤토리를 무조건 비싸게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산 마메스 외벽에는 대형 디지털 스크린 광고판도 설치돼 있어, 경기가 없는 날에도 티켓 판매나 지역 행사 홍보 같은 인벤토리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외벽 디지털 스크린, 경기가 없는 날에도 활용되는 광고 인벤토리 · 출처: Ardfer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중계권과 유럽 대항전
라리가는 2022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총 49억 5천만 유로 규모의 국내 중계권 계약을 운영 중인데, 2025-26시즌 기준 아틀레틱에 배분된 몫은 6,750만 유로였습니다.
레알 마드리드(1억 5,750만 유로)나 FC바르셀로나(1억 5,640만 유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1억 810만 유로)에는 못 미치지만, 20개 구단 중에서는 상위권에 속하는 수치입니다.
여기에 더해 아틀레틱은 2025-26시즌 챔피언스리그 리그 페이즈 진출권을 따내며 1998-99시즌, 2014-15시즌에 이어 세 번째로 유럽 최상위 대회 무대를 밟았습니다.
중계권 배분 구조상 챔피언스리그 참가 자체가 상당한 추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만큼, 스쿼드 규모나 이적료로 화제를 모으지 않는 구단치고는 재무적으로 꽤 단단한 기반을 갖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공간 활용과 F&B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리서치 과정에서 확인한 관람 후기들은 신구장 산 마메스의 콘코스(관중석 바깥의 통로 겸 편의시설 공간)가 구관보다 훨씬 넓어지고 화장실도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다만 하프타임마다 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는 불만도 함께 발견돼, 시설 자체의 여유와 실제 혼잡도는 다른 문제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먹거리는 핀초스(바스크식 꼬치안주)와 보카디요(바게트 샌드위치), 현지 사과술 시드라 같은 바스크 전통 메뉴가 중심인데, 정작 맥주는 하이네켄 한 브랜드만 판매돼 아쉬웠다는 직관 후기도 눈에 띄었습니다.
오히려 현지의 한 여행 블로거는 경기 시작 전 구시가지 카스코 비에호의 플라자 누에바 일대에서 펼쳐지는 “핀초스 크롤” 문화를 더 인상적으로 꼽았는데, 술집을 옮겨 다니며 차콜리(스파클링 화이트와인)나 칼리모초(레드와인에 콜라를 섞은 바스크식 칵테일)를 곁들여 핀초스를 맛보는 게 경기장 안 못지않은 관람 경험이라는 겁니다.
경기장 시설 투자만큼이나 주변 상권과의 연계가 전체 관람 경험을 완성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 마케터로서는 구장 담장 안쪽만 보고 있으면 놓치는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산 마메스 외관 · 출처: Ardfern,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상품(MD)과 박물관
산 마메스 안에는 게이트 0번과 26번 사이에 공식 스토어가 있고, 별도로 ‘아틀레틱 클루브 무세오아’라는 박물관이 50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며 구단 역사를 소개합니다.
오디오가이드를 포함한 박물관+스타디움 투어는 90분 일정으로, 성인 요금은 14유로, 6~14세 아동은 5유로 수준입니다.
유스 아카데미 출신 선수와 지역 정체성을 앞세우는 만큼, 상품 구성도 화려한 스타 마케팅보다는 클럽의 역사와 뿌리를 파는 방식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관중석에 새겨진 ATHLETIC CLUB 글자와 지붕 트러스 구조 · 출처: EinfachFrankfurt1955,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국내에서 “팬이 주인인 구단”이라고 하면 흔히 대구FC나 인천 유나이티드 같은 시민구단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구조를 들여다보면 차이가 꽤 큽니다.
국내 시민구단은 형식적으로는 시민 자본으로 세워졌지만 구단주 역할은 대개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맡고, 메인 스폰서 자리도 지자체가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아틀레틱의 소시오 제도는 회원이 낸 회비로 운영되고 4년마다 회원 스스로 투표해 회장을 뽑는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 구조입니다.
겉모습은 둘 다 “팬 소유” 클럽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사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셈입니다.
또 하나 짚이는 지점은 재정 구조입니다.
국내 시민구단 다수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유망주를 키워 이적료 수입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는 “셀링 클럽” 구조에 가깝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데, 아틀레틱은 앞서 본 것처럼 방송중계권 배분에서도 라리가 상위권을 유지하며 셀링 압박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재무 기반을 갖췄습니다.
같은 “지역 정체성”을 내세우는 구단이라도 수익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 K리그 시민구단들이 벤치마킹할 부분은 회원 투표 제도 자체보다 오히려 이 재정 자립 기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 선수 영입 소식이나 대형 스폰서 계약 발표처럼 화제성 있는 이슈가 없어도, 130년 가까이 지켜온 원칙 하나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는 구단이 있다는 걸 이번 리서치를 통해 다시 확인했습니다.
화려한 마케팅보다 일관성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아틀레틱 빌바오가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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