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럽 이적시장 기사를 훑어보다가 낯익은 이름 하나가 걸렸습니다.
세르비아 명문 츠르베나 즈베즈다(한국에는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로 더 알려진 클럽입니다)가 왼발잡이 센터백을 찾고 있는데, 그 후보로 대한민국 김태현 선수 이름이 거론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협상이나 정식 오퍼가 확인된 단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김태현 선수가 지금 몸담고 있는 구단이 일본 J1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라는 걸 알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 구단의 최근 행보가 궁금해졌습니다.

자료출처 : 김태현의 국가대표 발탁을 알리는 가시마의 게시물. /사진=가시마 앤틀러스 공식 SNS
공식 홈페이지를 열어보니 첫 화면부터 예상 밖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타디움 이름이 “메르카리 스타디움”이더군요.

출처: 가시마 앤틀러스 공식 홈페이지(antlers.co.jp)
메르카리는 일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같은 서비스를 떠올리면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단순히 광고판 하나를 사는 수준이 아니라, 2019년 7월에 가시마 앤틀러스 구단 지분 61.6%를 옛 모기업 니혼세이테츠(옛 스미토모금속공업)로부터 약 16억엔(정확히는 15억9700만엔)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니혼세이테츠는 11%를 남기고 계속 스폰서로 관여하고, 나머지는 가시마시를 비롯한 지역 지자체와 지역 기업들이 나눠 갖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6년 뒤인 2025년 6월, 메르카리는 이번엔 구단이 아니라 구장 자체의 명명권(스타디움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흔히 네이밍라이츠라고 부릅니다)을 이바라키현으로부터 사들였습니다. 계약 기간 3년, 연간 사용료 1억5000만엔을 이바라키현과 구단이 절반씩 나눠 받는 조건입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회사가 대주주로 있는 구단의 홈구장에, 다시 자기 회사 이름을 붙인 셈입니다. 제 경험상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스폰서를 유치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스스로 완성하는 구조를 만든 건데, 이 정도로 소유·명명·마케팅이 한 회사 안에서 순환하는 사례는 흔치 않아서 눈이 갔습니다.
이런 구조 아래서 가시마 앤틀러스는 2025시즌 9년 만에 통산 9번째(J1리그 사상 최다)우승을 차지했습니다(직전 우승은 2016년).
12월 6일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상대로 한 우승 결정전에서 2-1로 이겼고, 이 경기에서만 2골을 넣은 레오 세아라가 시즌 21골로 득점왕까지 가져갔습니다.
그 해 홈 리그경기 누적 관중은 52만615명으로 구단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다만 2026년에는 리그 운영 방식이 한시적으로 바뀌면서(동서 조별리그 후 플레이오프로 우승팀을 가리는 “백년구상리그”라는 특별대회 형식이었습니다) 조별리그는 18경기 29득점·9실점으로 압도적 1위를 했지만, 결승에서 비셀 고베에 2경기 합계 2-5로 무릎을 꿇어 최종 2위에 머물렀습니다.
이 관중 기록이 더 흥미로운 건 홈타운인 가시마시의 인구가 약 6만7000명으로 J1 전체 연고지 중 가장 작다는 점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쿄역에서 신칸센도 없이 고속버스로 최소 2시간(편도 약 2100엔)을 가야 하는 곳이라, 한 지역 소개 매체는 이 구단을 아예 “육지의 외딴섬에 수만 명이 몰려드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구장을 처음 홈 응원석 쪽에서 관전했다는 한 축구 전문 매체 기자의 후기를 보니, 평소 원정석에만 앉아봐서 몰랐는데 홈 쪽 콘코스 2층에만 매점이 스무 곳 넘게 늘어서 있고, 학교 축제 같은 손맛 나는 분위기에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매점들 상당수가 공통으로 파는 명물이 “모츠니”(곱창을 된장 베이스로 오래 끓인 국물 요리)인데, 20여 년 전 한 매장이 우연히 히트시킨 메뉴를 주변 매장들이 따라 팔면서 자연스럽게 구장 명물이 됐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먹어보진 않았지만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먹어보겠습니다.
누가 기획한 게 아니라 매점들끼리 경쟁하다 자연발생적으로 브랜드가 만들어진 셈인데, 마케터로서는 위에서 억지로 밀어붙인 캠페인보다 이런 바텀업 방식의 확산이 훨씬 오래가고 진짜 팬 문화로 자리잡는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가격대도 500~700엔선으로 부담이 적고, 온라인 관전 가이드를 쓰는 블로거들은 메인스탠드 쪽은 그늘이 많아 낮경기에도 쌀쌀하고 백스탠드 쪽은 볕은 좋지만 저녁엔 서향이 따갑다는 식으로, 시간대·좌석별 체감까지 세세하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상품·스폰서십 쪽 지표도 짚어보면, 2024회계연도 매출(영업수익)이 72억엔으로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높았고,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이적 수입만 9억6400만엔(해외 이적 4억9900만엔, 국내 이적 4억6500만엔)을 벌어들인 것도 눈에 띕니다.
유니폼에는 메인스폰서 JAL(일본항공)을 비롯해 가슴 부분 카시오, 등 부분 오츠카제약, 소매 부분 니덱(일본전산)까지 자리를 채우고 있고, 여기에 아지노모토AGF·기린음료·아식스·사가와익스프레스·JT 같은 파트너 기업들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중계권 쪽에서는 J리그 전체가 2017년부터 DAZN과 10년 2100억엔 계약을 맺었다가, 2023년부터는 11년 최대 2395억엔 규모로 다시 연장했으니, 가시마도 이 파이의 일부를 나눠 받는 구조입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지역밀착 쪽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고향납세형 크라우드펀딩”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시행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가 같습니다. 선수들과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홍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아직 우리나라는 스포츠 산업에는 그렇게 활성화되진 않았어요.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자신이 사는 지역이 아닌 다른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해서, 팬이 기부하면 실질 자기부담은 2000엔 수준인데 그 돈이 지자체 세수로 잡히고, 다시 구단의 유소년 시설 정비 등에 투입되는 구조를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만들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2024년도까지 5년간 누적 약 6억1000만엔, 연인원 약 1만 명의 후원을 모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2018년 설립된 “안트라즈 홈타운 관광지역만들기법인”(지역 관광 콘텐츠를 통합 기획·운영하는 일본식 관광진흥 조직으로, 흔히 DMO라 불립니다)이 가시마시뿐 아니라 인근 4개 시까지 묶어서 기업 간 협업 사업을 벌이는 것도 단순 홍보를 넘어선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리그와 비교해보면 시사점이 뚜렷합니다.
K리그는 2025시즌 1부 리그(K리그1) 기준 유료관중이 200만 명을 넘겼고, K리그 전체 입장수입은 461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하는데, 12개 구단을 합친 K리그1 전체 관중 규모가 가시마 한 구단의 2025시즌 홈 관중(52만 명)의 4배가 채 안 되는 셈입니다.
물론 리그 규모나 역사가 다르니 단순 비교는 조심스럽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스타디움 네이밍라이츠를 판매한 사례가 사실상 없다시피 한 반면 J리그에서는 모기업이 직접 네이밍라이츠까지 사들여 브랜드를 통합하는 실험까지 나온다는 점은, K리그 구단들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위에서 기획한 이벤트보다 매점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키운 “모츠니 문화”가 구장을 상징하는 콘텐츠가 됐다는 사실은, 팬 경험을 억지로 설계하기보다 자생적으로 자라날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도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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