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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장의 이름이 20여 년 사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면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들여다본 곳은 일본 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홈구장으로, 지금은 ‘벨루나돔’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구장입니다.
인보이스, 굿윌, 세이부 프린스, 메트라이프를 거쳐 지금의 벨루나까지, 네이밍라이츠 스폰서가 바뀔 때마다 간판을 새로 단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이 원고를 쓰는 시점(8월 29일 기준)에도 세이부는 소프트뱅크에 5경기 차로 바짝 붙은 채 퍼시픽리그 2위를 달리고 있어, 지금 들여다보기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다녀온 구장은 아니고, 구단 공식 자료와 언론 보도, 현지 직관 후기를 종합해 마케터 시각에서 정리해 본 벤치마킹 분석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ウィ貴公子 촬영, 2026년 7월 22일) · CC BY-SA 4.0 — 벨루나돔 메인게이트 외관
네이밍라이츠와 광고 인벤토리
광고 인벤토리(구단이 판매할 수 있는 광고 지면), 좌석, 네이밍라이츠(시설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등을 통칭하는 마케팅 용어)의 관점에서 이 구장만큼 드라마가 많았던 곳도 드뭅니다.
1999년 지붕 공사를 마치며 ‘세이부돔’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유상 네이밍라이츠 계약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첫 계약자였던 인보이스는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원했지만 세이부 구단이 계약 갱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2년 만에 관계가 끝났고, 뒤를 이은 굿윌은 5년 총액 25억 엔(추정) 규모로 계약했다가 계열사의 불법 파견 사업이 적발돼 후생노동성 사업정지명령을 받으면서 단 1년 만에 ‘굿윌돔’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후 구단 오너 측이 스폰서 이미지가 구단에 그대로 옮겨붙는 리스크를 이유로 신규 계약을 한동안 보류하면서,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다시 ‘세이부돔’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위키백과 정리 참고).
그 뒤로 세이부 프린스(2015~2017년), 메트라이프(2017~2022년, 팬들 사이에서는 줄여서 ‘메라도’로도 불렸습니다)를 거쳐, 2022년 1월에는 사이타마현 아게오시에 본사를 둔 통신판매기업 벨루나가 2027년 2월까지 5년 계약으로 네이밍라이츠를 사들이며 지금의 ‘벨루나돔’이 됐습니다.
유니폼 소매 광고 같은 좁은 의미의 광고 인벤토리도 활발히 팔리고 있습니다.
2026년 2월 스프링캠프부터는 업무용 소프트웨어 기업 사이보즈의 ‘kintone’ 로고가 세이부 선수단 유니폼 오른쪽 소매에 새겨지기 시작했는데, 지역과 함께 성장한다는 공통된 지향점을 계약 배경으로 내세운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관중과 티켓
벨루나돔의 전체 수용 인원은 31,552명, 프로야구 개최 시 좌석 배치 기준으로는 28,104명입니다(2026년 기준).
4만 명대 구장이 여럿인 일본 프로야구 안에서는 오히려 아담한 축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작음’을 약점이 아니라 무기로 바꾼 게 최근 세이부의 흥행 전략입니다.
2025시즌 평균 관중은 24,395명으로 2024시즌(21,601명)보다 2,794명 늘었는데, 이 증가율(전년比 약 13%, 환산하면 전년의 112% 수준)이 12구단 중 가장 높았습니다.
구단 홍보부 담당자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팬클럽 회원 중 20~30대 비중이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압도적 지근거리’라는 표어를 내걸고 선수와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경기 종료 직후 그라운드에 내려가 방금까지 선수들이 뛰던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애프터 더 게임’, 홈런이나 득점이 나오면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스플래시시트’, 선수와 같은 눈높이에서 관전하는 ‘필드뷰시트’ 등이 이 전략을 구체화한 사례입니다.
특히 눈에 띈 대목은 ‘오시카츠(최애를 응원하는 활동)’ 문화를 겨냥한 접근이었습니다.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니시카와 아이야 선수 관련 굿즈 매출이 전년 대비 1,000% 늘었다는 수치가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무료 티켓 회원을 유료 팬클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내점 이력과 인구통계 데이터를 나눠 관리하는 CRM(고객관계관리)도 함께 가동 중인데, 2025시즌 종료 시점 유료 팬클럽 회원은 약 11만 8천 명이라고 합니다.
관중을 그저 ‘입장 인원’으로만 보지 않고 데이터로 세분화해서 관리한다는 점은, 국내 구단 마케팅 부서에서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켓 가격대는 좌석에 따라 폭이 넓습니다.
내야지정석이 2,300엔에서 6,300엔, 외야지정석이 1,700엔에서 5,000엔, 백네트 뒤 지정석은 3,600엔에서 7,500엔 선이며(2026시즌 성인 팬클럽 회원가 기준), 상단의 다그아웃탑시트는 회원 등급에 따라 12,200엔에서 18,900엔까지 올라갑니다.
실제로 2026년 7월 22일 니혼햄전은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활용과 F&B
콘코스 안쪽에는 ‘엘즈 그루메 스트리트’로 불리는 취식 공간이 있는데, 약 70개 매장에서 1,000종이 넘는 메뉴를 파는 규모로 12구단 중에서도 손꼽히는 편입니다.
키친카 형태의 매장이 많아 시즌 중에도 메뉴 구성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ウィ貴公子 촬영, 2026년 7월 22일) · CC BY-SA 4.0 — 엘즈 그루메 스트리트
현지의 한 직관 후기 블로거는 여름철 야간 경기에서도 바람이 안 불면 상당히 덥다고 적어 두었는데, 실제로 구단 쪽도 이런 반응을 의식한 듯 얼음주머니 무료 제공이나 대형 미스트 장치 설치 같은 더위 대책을 매년 조금씩 늘려가고 있습니다.
F&B 매장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그 공간에서 관람객이 실제로 얼마나 쾌적하게 시간을 보내는지까지 챙기는 게 마케터 입장에서는 눈여겨볼 지점이었습니다.
상품(MD)과 매장
팀스토어 ‘플래그스’는 약 600㎡ 규모의 2층 매장으로, 4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에 새 메인게이트 자리에 신축됐습니다.
이 밖에도 오미야 지역의 다기능 매장, 역 구내 편의점 ‘토모니’, 온라인 스토어까지 판매 채널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ウィ貴公子 촬영, 2025년 6월 28일) · CC BY-SA 4.0 — 팀스토어 플래그스에 진열된 75주년 기념 레플리카 캡
사진 속 모자는 구단 창단 75주년 시리즈로 나온 레플리카 캡입니다.
앞서 언급한 니시카와 아이야 선수처럼 특정 선수 개인의 인기가 굿즈 매출로 직결되는 사례가 늘면서, MD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누구를 앞세울지’를 더 세밀하게 설계하는 흐름이 읽혔습니다.
구장만의 상징 — 지붕은 있어도 벽이 없는 돔
벨루나돔의 가장 큰 특징은 지붕은 있는데 벽이 없다는 점입니다.
1997~1999년 돔 공사 당시, 스탠드 맨 위에서 뻗어 나온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는 구조로 설계됐는데, 지붕과 스탠드 사이에 벽을 세우지 않아 그 틈으로 바깥 공기가 그대로 드나듭니다.
그 덕분에 냉난방 설비 없이도 자연 환기가 되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유일하게 장외 홈런이 나오는 돔구장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세이부에서 뛴 알렉스 카브레라 선수가 이 구조 덕에 종종 담장 밖으로 공을 넘겼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벽 없이 지은 이유에 대해 한 부동산 전문 매체는, 완전히 밀폐된 돔으로 지었다면 건축기준법(피난 통로, 화재 대비 방재 설비 등을 규정한 일본의 건축 관련 법)상 훨씬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받았을 것이고 고정자산세(건물 가치에 매년 부과되는 재산세 성격의 일본 지방세)도 더 많이 물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기존 노천 구장에 지붕만 얹는 공사로 마무리한 배경에 이런 현실적인 계산이 있었다는 해석인 셈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Spitfireap 촬영, 2009년) · CC BY 3.0 — 지붕과 스탠드 사이 개방형 구조는 1999년 완공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입지 자체가 사야마 구릉지대라 봄가을에는 쌀쌀하고 여름 밤경기에도 후텁지근하다는 후기가 많은데, 벽이 없다 보니 비가 스탠드 위쪽까지 들이치거나 우렛소리가 야외와 다름없이 크게 들린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반대로 이런 개방적인 구조 덕분에 실내 악기를 상시 운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어서, 이 구장은 NPB 12개 구단 본거지 중 유일하게 전자 오르간을 상시 배치해 시합 중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불편함과 개성이 한 구조에서 함께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구장에는 소소하게 재미있는 전통도 있습니다.
지붕이 없던 노천구장 시절부터 세이부가 이기면 인근 제3구장에서 실제 불꽃을 쏘아 올리는 행사가 열렸고, 돔화 이후에는 장소를 백스크린 앞으로 옮겨 종이테이프와 함께 폭죽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2010년부터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실제 폭죽 대신 대형 전광판에 불꽃 영상을 띄우는 연출로 바뀌었는데, 이 변화 하나만 봐도 구단이 팬 경험과 비용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해왔는지 엿보여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대목이었습니다.
중계권과 지역 경제효과
중계 쪽에서는 DAZN이 히로시마 주최 경기를 제외한 NPB 전 경기를 배급하고 있으며, 요금제는 연간 2만 7,600엔 또는 월 2,300엔 수준입니다.
구장 부지와 건물은 세이부 철도가 소유하고 운영은 주식회사 세이부 라이온즈가 맡는 구조인데, 모기업인 세이부 홀딩스는 2004년 불거진 유가증권보고서 허위 기재 사건(이른바 ‘코쿠도 사태’) 이후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된 그룹입니다.
지역 밀착 측면에서는 2015년 도코로자와시와 맺은 연계협력 협정을 시작으로, 지금은 사이타마현 내 63개 시·정·촌 전체가 ‘라이온즈 프렌들리시티’라는 이름으로 구단과 협정을 맺고 스포츠 진흥·청소년 육성·지역 진흥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6년 여름 아오이페스에는 도코로자와시 공무원 약 2,000명이 한정 유니폼을 입고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구장 자체도 야구 외에 SUPER JUNIOR, EXO, Stray Kids 같은 대형 콘서트를 꾸준히 유치하며 비시즌 가동률을 높이고 있는데, 2017년 콘서트 영업력이 강한 요코하마 아레나를 자회사로 편입한 것도 이런 복합 공간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국내 구장의 이름은 대부분 그 구단을 소유한 모기업이 자기 브랜드를 붙인 경우입니다.
한화생명 볼파크나 삼성 라이온즈 파크처럼요.
구단 소유와 무관한 제3자가 시장 가격을 치르고 네이밍라이츠만 사들이는 방식에 가장 가까운 국내 사례는 오히려 구장이 아니라 구단명 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넥센타이어에 이어 지금은 키움증권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가 그렇습니다.
다섯 차례나 스폰서가 바뀌고, 그중 한 곳은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물러난 벨루나돔의 이력은, 그만큼 이 시장이 실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구조 면에서도 국내에는 이런 절충형 돔이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은 완전 밀폐형이라 냉난방이 가동되는데, 벨루나돔은 세금과 건축 규제를 피하려는 현실적 판단 아래 ‘지붕만 있는 돔’이라는 독특한 절충안을 택한 셈입니다.
국내에서 신규 구장을 계획할 때 완전 밀폐형 돔이 아니더라도 관람 쾌적성을 확보할 다른 방법이 있는지, 이 구장의 사례가 참고가 될 법합니다.
오시카츠 마케팅이나 CRM 기반의 유료 회원 전환처럼 세이부가 보여준 접근은, 국내 구단 중 KT위즈가 창단시부터 공을 들여 만들었고 여러 구단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특정 선수 개인의 팬덤을 굿즈 매출 수치로까지 구체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은 흔치 않은 사례였고, 무료 회원과 유료 회원 사이의 접점을 데이터로 나눠 설계한다는 발상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름이 몇 번을 바뀌어도, 벽이 없어 여름마다 애를 먹어도, 결국 관중을 늘리는 건 선수와 팬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리서치였습니다.
마침 세이부는 지금 순위표에서도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이 흐름이 시즌 끝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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