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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신 고시엔 구장의 그라운드를 뛰는 건 프로선수가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고등학생들입니다.
마침 이 시기 제108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 이틀째 경기가 한창인데, 정작 이 구장의 주인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는 홈을 비우고 원정길에 올라 있습니다.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대회 일정표를 확인하다 보니, 프로구단이 자기 홈구장을 매년 몇 주씩 통째로 아마추어 대회에 내주는 방식이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구조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한신 타이거스와 고시엔 구장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고시엔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저의 눈에 들었왔던 사진입니다.
2024년 여름(夏)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코너로, “결승 사상 최초의 타이브레이크를 제압하고 교토국제가 첫 우승”, “오야시로(시마네)가 93년 만에 8강 진출, 돌풍을 일으키다”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우승팀 투수 나카자키 류세이 선수가 역투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교토국제고는 1999년 야구부 창단 후 25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에서 간토다이이치(関東第一)와 9회까지 0-0으로 맞서다 사상 처음으로 결승전에 타이브레이크(연장 승부치기)가 도입돼 10회 2-1로 승리했습니다.
교토 지역 학교의 우승은 1956년 헤이안고 이후 68년 만이었고요. 우승 직후 고시엔에 울려 퍼진 교토국제고 교가에 한국어 가사가 포함돼 있어 당시 일본과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던 대회였었습니다.
고시엔 구장은 1924년 원래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열기 위해 지어진 구장으로, 한신 타이거스(당시 오사카 타이거스)는 1936년이 되어서야 이곳을 홈구장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순서로 보면 고교야구가 먼저고 프로야구가 나중에 들어온 셈인데, 이 태생적 순서 때문에 지금도 매년 3월 봄 선발대회와 8월 여름 선수권대회 기간에는 타이거스가 교세라돔 오사카 등에서 대신 홈경기를 치릅니다.
현지에서는 이 기간을 “죽음의 로드”라고 부를 정도로 일정이 빡빡한데, 그럼에도 구단이나 팬 모두 이 관행에 불만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고시엔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을 지키는 값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팬과 관중
2025시즌 한신은 5월 22일 경기에서 이미 시즌 누적 관중 100만 명을 넘어섰고, 홈경기 70경기 티켓이 발매 시작과 거의 동시에 전 경기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신 타이거스 관계자와 미팅시 구장의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이처럼 관중 매진이 되는 것은 이 구장의 역사와 정통성이라고 하더군요.
4만 7천 석 안팎인 구장 규모를 감안하면 평균 관중도 NPB 최상위권입니다. 그 결과로 2025시즌 센트럴리그에서는 2년 만에 통산 7번째 리그 우승을 확정했지만, 일본시리즈 무대에서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1승 4패로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광고 인벤토리와 네이밍라이츠
요즘 국내에서는 새 야구장을 지으면 아예 처음부터 기업명을 통째로 붙이는 네이밍라이츠(시설에 기업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계약이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고시엔 구장은 100년 넘게 구장 전체 이름을 팔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2008년부터 경기장 내 특정 좌석·구역 단위로만 명명권을 판매해, SMBC 시트나 미츠야 사이다 박스 같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외야 스코어보드 주변과 사이드보드에는 미쓰비시전기, 아사히, 미즈노 같은 간사이 연고 기업과 스포츠용품 브랜드 광고가 빼곡히 배치돼 있어, 구장 이름 자체는 지키면서도 경기 중 노출되는 광고 인벤토리는 촘촘하게 채워 넣는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고시엔”이라는 글자 자체가 이미 일본 야구를 상징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이름을 바꿔 파는 대신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 셈입니다.

티켓
좌석 위치별로 가격대가 뚜렷하게 나뉩니다.
내야 프리미엄석인 아이비석·브리즈석은 4,500~4,800엔(약 4만 1천~4만 4천 원), 외야 라인을 따라 있는 알프스석은 2,500엔(약 2만 3천 원), 가장 저렴한 외야석은 1,900~2,200엔(약 1만 7천~2만 원) 선입니다.
저렴한 외야석일수록 오히려 응원 열기가 가장 뜨거운 구역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공간 활용과 F&B
2024년에는 외야석 리뉴얼을 통해 좌석 폭을 넓히고 컵홀더를 추가했고, 콘코스 곳곳에는 오사카식 먹거리와 미국식 메뉴가 섞인 매장이 즐비합니다.
현역·은퇴 선수 이름을 붙인 콜라보 메뉴를 파는 것도 특징인데, 등에 미니 생맥주통을 지고 다니며 좌석까지 배달하는 이른바 “비어걸” 전통은 고시엔 관람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로 꼽힙니다.
콘코스가 3층 구조로 나뉘어 있어 다소 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안내 동선은 명확했고, 큰 체구의 관람객에게는 좌석이 다소 좁을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짚고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설 스펙보다 사소해 보이는 동선 설계와 배려가 실제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상품(MD)
한신백화점 8층에는 2,000여 품목을 갖춘 대형 팀샵이 있고, 2024년 구장 개장 100주년을 맞아 온라인몰을 “고시엔 e몰”로 새로 단장하며 기념 상품을 여러 차례 추가 발매했습니다.
티켓과 마찬가지로 우승 시즌에는 기념 상품이 발매 직후 완판되는 경우가 잦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역 밀착과 경제효과
리그 우승이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력도 상당했습니다.
간사이대학 미야모토 가쓰히로 명예교수가 발표한 추산에 따르면, 2025년 한신의 리그 우승에 따른 경제효과는 전국 기준 약 1,084억 4,513만 엔(우리 돈으로 약 9,800억 원 안팎), 간사이 지역만 놓고 봐도 약 976억 엔(약 8,900억 원 안팎)에 달했습니다.
모기업인 한큐한신홀딩스도 2026년 3월기 실적 전망을 발표하면서, 우승 효과로 흥행수입과 호텔 사업이 호조를 보여 스포츠 사업 부문 영업이익이 123억 엔(약 1,1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이는 지난번 우승 시즌이던 2024년 3월기 실적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룹 전체 연결영업이익 전망도 전년 대비 15% 늘어난 1,274억 엔(약 1조 1,600억 원)으로 상향 조정됐는데, 야구단 하나의 성적이 철도·부동산·유통을 함께 하는 대기업 그룹 실적 전망을 끌어올렸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고시엔만의 명물 — 잭풍선과 롯코오로시
7회 초 종료 후 팬들이 일제히 날리는 “잭풍선(제트후센)”은 고시엔만의 상징적인 전통입니다.

1978년 히로시마 원정팬이 처음 시작한 뒤 한신 팬들도 따라 하면서 지금은 3만 개가 넘는 노란 풍선이 응원가 “롯코오로시” 제창의 클라이맥스에 맞춰 하늘로 솟아오르는 명물이 됐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비말 감염 우려로 한동안 중단됐다가, 2026년 4월 7일 히로시마전에서 7시즌 만에 공식 재개된 것도 최근 화제였습니다.
관람했었을 때 옆자리 팬이 여분의 풍선과 응원가 인쇄물을 아무 말 없이 건네준 순간부터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고시엔 역사관 — 100년의 드라마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공간
이번 리서치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구장 바로 옆에 자리한 “고시엔 역사관”이었습니다.
고교야구와 한신 타이거스, 그리고 구장 자체의 역사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이 박물관은 2022년 3월 구장 남쪽에 새로 들어선 복합시설 “고시엔 플러스” 2층으로 전시 공간을 이전·확장하며 리뉴얼 오픈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시 면적이 기존보다 1.25배 넓어졌습니다.

유니폼과 공, 모자, 우승 페넌트 같은 사료부터 역대 명승부 영상, VR·AR 체험 콘텐츠까지 갖추고 있고, 오타니 쇼헤이·마쓰이 히데키·마쓰자카 다이스케처럼 지금은 메이저리거로 더 유명한 선수들이 고교 시절 이 그라운드를 밟았다는 사실을 함께 소개하는 점이 눈에 띕니다.
프로 레전드가 되기 전의 이야기를 박물관 콘텐츠로 끌어와, 고교야구 성지라는 정체성과 프로구단의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이어붙인 셈입니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 900엔(약 8,200원), 고등학생 700엔, 어린이(4세~중학생) 500엔이고, 불펜과 라커룸, 더그아웃까지 둘러보는 스타디움 투어를 결합하면 성인 기준 2,000엔(약 1만 8,200원)입니다.
이 투어에서 3루측 불펜과 라커룸, 더그아웃을 직접 걸어보고 그날 밤 경기를 위해 정비되는 내야까지 지켜본 뒤 관중석까지 이동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다녀본 구장 투어 중 최고였습니다.
투어가 끝난 뒤에는 선수 카드와 기념품을 받았습니다.
유니폼과 공, 모자, 페넌트 같은 사료와 영상 전시, VR 체험을 둘러본 뒤 타이거스 유니폼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코너가 있었다는 점, 출구의 뮤지엄숍에서 타이거스뿐 아니라 다른 NPB 구단 상품도 일부 팔고 있었습니다.
티켓 판매와 굿즈 매출 밖에 별도 입장료를 받는 박물관을 구장 바로 옆에 붙여놓고, 고교야구라는 아마추어 콘텐츠까지 함께 파는 방식은 국내 구단이 눈여겨볼 만한 수익원 다각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BO·K리그와 비교해보면
국내에서는 신축 구장에 기업명을 통째로 붙이는 네이밍라이츠 계약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K리그·KBO 모두에서 확산되는 트렌드인 반면, 고시엔은 100년 넘게 쌓아온 브랜드 자체를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브랜드가 이미 충분히 축적된 자산이라면 이름을 파는 대신 지키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국내에서는 프로구장과 아마추어·유소년 시설이 철저히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잔디가 상한다거나 관리가 어렵다거나의 이유를 대곤 했는데, 고시엔처럼 매년 일정 기간을 아마추어 대회에 통째로 내주고 그 역사까지 박물관 콘텐츠로 함께 파는 방식은 오히려 구장의 상징성과 세대를 잇는 팬층 확보, 티켓 매출 밖의 부가 수익원 확보에 동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매진 행진이 만들어내는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대학 연구자의 이름을 걸고 수치로 공개하는 방식 역시, 구단 성과를 지역사회에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는 국내 구단들이 참고할 만한 접근입니다.
물론 100년 역사와 고교야구라는 독자적 콘텐츠를 함께 가진 고시엔의 상황을 그대로 국내에 대입하기는 어렵지만, 매진 사례를 만드는 힘이 결국 구장이 지닌 역사성과 팬들과 나누는 사소한 경험에서 나온다는 점은 리그를 막론하고 통하는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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