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미국 출장을 준비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사실 어느 구장도 아닌,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었습니다. 15년째 국내 프로구단에서 마케팅 업무를 해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리그의 본사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MLB 사무국은 뉴욕 애비뉴 오브 아메리카스 1271번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30개 구단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커미셔너 사무국으로, 로버트 만프레드 커미셔너를 정점으로 사업·미디어 담당 부총재와 야구운영·법무 담당 부총재가 각자의 영역을 나누어 리그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 소재에 정교하게 새겨진 MLB 로고였습니다. 안내 데스크 위에는 야구공 모양 사탕이 담긴 유리병과 기념 야구공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손님을 맞이하는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도 리그의 브랜드가 배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프로구단 마케터로 일하다 보면 KBO 사무국을 방문할 일이많이 있는데, 그 규모와 공기의 밀도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KBO는 총재를 중심으로 사무국을 관할하고, 마케팅 사업은 별도 자회사인 KBOP가 맡는 구조입니다. 반면 MLB는 마케팅, 방송·미디어, 기술·데이터, 국제사업, 스폰서십까지 사무국 안에 모든 기능을 수직으로 통합해 놓고 있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리그의 사업 전략과 실행이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가장 크게 체감한 차이는 중계권 규모였습니다. KBO는 2024~2026시즌 유무선 중계권을 CJ ENM 에 3년 총 1,350억원, 연평균 450억원 규모로 계약했고, 이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대 금액이었습니다.
반면 MLB는 최근 2026~2028시즌 중계권 중 ESPN·NBC·넷플릭스 3개사와의 신규 계약만으로도 연간 약 8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규모를 확보했습니다. 여기에 폭스, TBS, 애플TV+ 등 기존 계약까지 더하면 전체 내셔널 미디어 권리 매출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단일 리그의 미디어 가치가 이
정도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계약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물론 시장 규모의 차이이겠지만 KBO는 한 사업자에게 유무선 통합 중계권을 계약하는 방식인 반면, MLB는 ESPN, NBC, 넷플릭스 등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 성격별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평일 정규시즌 경기는 ESPN, 일요일 프라임타임은 NBC와 피콕, 개막전이나 홈런더비 같은 특별 이벤트는 넷플릭스가 나누어 가져가는 식입니다. 하나의 리그가 여러 플랫폼과 계약해 노출 채널을 다각화하는 전략은, 앞으로 국내 리그의 중계권 협상에서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고 영역에서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MLB는 2023시즌부터 유니폼 소매에 스폰서 로고를 부착하는 것을 허용했고, 패치는 4인치 x 4인치 이내로 제한되지만 2025시즌 기준 30개 구단 중 25개 구단이 유니폼 패치 스폰서를 유치했습니다. 구단이 자율적으로 스폰서를 유치하고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KBO도 유니폼 상의 소매 양쪽에 광고를 이미 허용하고 있어 큰 틀에서는 비슷합니다. 다만 2026시즌부터는 마운드 뒤편 관중에게 보이는 위치에
형태의 실물 광고까지 새롭게 허용하기로 했고, 국내 리그도 광고 인벤토리를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다만 이런 신규 광고 면적이 실제 관람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은, 마케터로서 항상 균형을 고민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사무국을 둘러보며 가장 크게 자극받은 부분은 AI와 데이터 기술 활용이었습니다. MLB는 구장마다 12대의 호크아이 카메라를 설치해 투구와 타구, 선수 움직임을 초당 수백 프레임으로 추적하는 스탯캐스트 시스템을 전 구장에 구축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중계 화면의 스트라이크존 표시나 타구 속도 그래픽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생성형 AI를 통해 하이라이트 영상의 설명 문구를 영어와 스페인어로 자동 생성하는 데까지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MLB는 2026시즌부터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ABS를 정식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방식은 KBO와 다릅니다. KBO는 2024시즌 세계 프로야구 리그 중 최초로 전 경기에 ABS를 전면 도입해 기계가 곧바로 판정을 내리는 방식을 택한 반면, MLB는 구심의 판정을 원칙으로 하되 팀당 경기당 2회까지 챌린지를 허용하는 절충안을 택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보수적인 리그로 꼽히는 MLB가 오히려 한국보다 2년 늦게, 더 신중한 방식으로 기술을 도입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KBO처럼 빠르게 ABS를 도입한 결과 실제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구장마다 ABS존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과 타자의 키에 의존하는 방식이 실제 타격폼과 괴리가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좀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않고 있기도 합니다.
리그 매출 규모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 명확해집니다. MLB는 2024시즌 사상 최대인 12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7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KBO는 2025시즌 관중이 사상 최초로 1,200만명을 돌파했고, 일부 구단은 매출이 1,000억원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절대적인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두 리그 모두 최근 몇 년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무국을 나서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국 이 모든 차이가 ‘스포츠를 하나의 콘텐츠 산업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야구라는 콘텐츠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사업화하는 여러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였습니다.
동시에 KBO가 세계 최초로 ABS를 전 경기 도입했던 사례처럼, 몸집이 작아도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장점을 살려 기술 도입이나 신규 제도에서 오히려 MLB보다 앞서가는 영역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강점을 살리면서, 중계권과 스폰서십처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MLB식 멀티플랫폼 전략을 참고할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간 국내 프로구단에서 마케터로 일하며 여러 해외 리그와 구장을 다녀봤지만, 이번 MLB 사무국 방문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경기장이 아닌 사무실 로비 한켠에서도 리그의 철학과 브랜드가 배어 나온다는 사실을, 나무에 새겨진 로고 하나로 다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뉴욕을 방문하실 계획이 있는 분들이라면, 양키 스타디움이나 시티필드뿐 아니라 MLB 사무국이 위치한 애비뉴 오브 아메리카스 일대도 한 번쯤 둘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세계 최고 리그의 심장부가 어떻게 뛰고 있는지, 그 온도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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